전북, 금5·은11·동17개 … 9위
선수 400명 참가 초등부 6위(4,650점) 중등부 8위(11,087점)
1978년 5월 27일부터 30일까지 대구에서 개최된 전국소년체전에서 전북 선수단은 금 5, 은
11, 동 17개 등 모두 33개의 메달을 따내 종합점수 1만1천5백10점으로 9위를 했다.
지난해의 10위의 수모를 당한 전북 선수단은 이를 만회하려고 안간 힘을 썼으나 역부족, 한등급만 오른 9위에 그치고 만
것이다.
대구 시민 운동장 등 18개 보조 경기장에서 거행된 제7회 소년체전에 전북선수단은 5백56명(임원
1백32명, 선수 4백24명)이 출전하였으며, 전주남중 농구와 전주서중 핸드볼이 준우승을 하였을 뿐, 단체종목에서 우승
종목이 하나도 없었다.
이 체전에서 금메달 리스트를 보면 육상 남중 3천m에서 우석중 3년 朴有錫(15)이 9분10초4로
우승했고, 여중 높이뛰기에서 李吉禮(전주중앙여중)가 1m70으로 대회 신기록으로 1위, 여자초등부 넓이뛰기에서 노점희(죽산초등
5년)가 자기기록을 10Cm나 올리면서 5m08로 금을 땄다.
이밖에 남자초등부 수영 접영 200m에서 朴永完(선유도초등학교)이 3분02초25로 금을 추가했고,
중등부 권기문(완산중)이 태권도에서 금을 획득 5개의 금을 땄을 뿐이다. 특히, 이 대회에서 부진한 종목은 양궁이 제주도
다음으로 꼴찌, 유도, 럭비풋볼, 농구, 정구, 야구 등은 8, 9위에 처졌다.
이처럼 전북 소년체전이 불량한 것은 첫째는 재정적 뒷받침이 허약하고, 다음으로 지도자의 빈곤이다.
각 팀을 육성 지도할 우수코치가 배치되지 않아 일반교사가 수업을 맡으면서 체육지도를 하기 때문에
선수들의 기량이 향상되지 않고 있다.
소년체전은 해마다 부정선수 시비로 5, 6개 종목에서 게임 몰수가 있었다.
이에 비해 전북 선수들은 한명도 부정선수 시비가 없어 모범 선수단상을 받았다.
본도가 전년도 전국 10위의 치욕적인 부진을 씻고 하위권 탈피에 몸부림을 치면서 도민의 기대와 신망을
받으며 출전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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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으나 역부족으로 기대에 부응치 못하고 초등부 6위, 중등부 8위, 종합
9위의 제자리 걸음에 그치고 말았다.
그 원인을 종합해 보면,
첫째 단계별 강화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팀의 재정적 지원을 맡고 있는 시·군과 학교측이 과연 장기간동안
쉬지않고 충분한 훈련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을 해 주었는가 하는 문제다.
선수들이 어릴수록 기초를 익히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것이 전술에까지 발전되려면 더욱 많은 반복훈련과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과연 그것이 흡족했는가를 먼저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둘째는 전지훈련과 교환경기의 소홀로 인한 발전된 기술의 도입과 정보의 미흡을 들 수 있다.
선수가 닦은 기량과 전술은 경기를 통해서 다듬어져야 함에도 도내에 라이벌 팀이 부재함으로서 연습상대가
없어 실제 경기를 통하여 전략을 세우고 전술을 익힐 기회가 드물었으며 그런 상태에서 지도자가 좋은 전술을 지도한다 해도
받아들이는 어린 선수들은 그 전술이 무엇을 어떻게 요구하는 지를 이해하기 어려운 법이다. 어린 선수들인 만큼 타 선수의
기량과 전술을 자주 보고 익힘으로써 지도자의 뜻을 속히 받아 들이도록 지도했어야 했을 것이며 그것이 정보의 근원일 것이다.
그런 연후에 좀 더 승부욕을 가지고 타도팀의 정보를 수집하고 그 것을 연구분석하여 상대팀의 전술을 무력케 할 수 있는
전략이 서야했다.
셋째는 임원, 선수들의 이겨야 한다는 사명감의 결여를 들 수 있다.
경기에 참여하는 임원, 선수가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야 있으련만 패색이 짙어지면 의욕마저 상실하고 마는 어린이들에게 대상할
수 있는 경기인으로서의 근성을 갖도록 지도해야 하며 지도자 역시 마찬가지라고 본다.
끝으로 지정학교의 재조정과 우수코치의 부족을 들 수 있다.
먼저 비인기종목은 3市 대단위 학교에서 육성토록 하여 비인기종목이 종합득점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적극적인 지원이 뒤 따라야 되겠으며 이에 수반하여 우수지도자를 대거 기용하여 전반적인 면에서 혁신을 가져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