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전국소년체육대회..[913]
6. 제 6회 전국소년체육대회
1977. 6. 1 ~ 4(서울)


전북, 금4·은10·동5개 … 10위


초등 113명, 중등 287명 참가
  제6회 소년체육대회가 77년 6월 1일부터 4일까지 4일동안 서울운동장 메인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전국의 11개 시·도대표 6천7백38명의 선수가 참가한 6회 소년체전에서 전북선수단은 당초 목표 4위에서 곤두발질하여 맨 하위인 10위를 기록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 대회에서 도세가 약한 충북은 73년 제2회 대회때부터 우승, 5연패라는 놀라운 경기력을 과시하였으나, 전북은 75년 4회때 종합 2위를 기록, “하면된다”는 자신감을 보였으나, 5회때 4위로 밀려났고 6회 대회는 그 선마저 무너져 제주 다음으로 10위로 주저않고 말아 임원, 선수는 물론 도민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전북은 이번 소년체전에 임원 80명, 선수 4백명 등 모두 4백80명의 선수단이 출전하여 금 4개, 은 10개, 동 5개 등 총 19개의 메달을 획득, 1만2백38점을 얻어 10위에 밀려났다.
검도가 2위, 배드민턴, 농구, 핸드볼이 3위를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서 값진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육상 넓이뛰기의 辛福女(전주중앙여중, 5m64), 수영 배영의 1백m의 조윤수(봉동초등학교, 1분20초04), 같은 종목 2백m에서 조윤수가 금을 추가했다.
  태권도 핀급에서 權基文(완산중)이 금을 딴데 불과했다.
  단체종목에서는 금을 딴 종목은 한 팀도 없고 은을 딴 팀을 보면 검도에 남중선발(전주서중, 정읍중), 정구 여중(순창여중), 농구 남중선발(전주남중, 군산중, 이리중), 테니스 여중선발(영광여중, 남원여중) 등 4개팀에 불과했다.
  제6회 소년체전의 몰락을 분석해 보면 육상트랙 남중과 여중부가 단 한점도 득점하지 못하여, 최하위에 밀렸고, 많은 물량을 투입한 수영, 양궁등 개인경기가 참패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근본적인 문제는 매년 소년체전에서 부정선수 시비가 잇따라 소년체전 자체를 불신한 전북 교육계 체육지도자들의 방심과 이에 따른 (1) 학부형, 관리자, 선수들의 체육 기피 현상, (2) 인적자원 부족, (3) 지도자의 빈곤, (4) 재원 부

 

  족 등을 열거할 수 있다.
  이번 체전에서 출전한 종목은 초등학교부가 육상 등 7개 종목, 중학교부가 21개 종목이었다. 한편 전북 교육계의 총수인 柳在榮교육감은 본래부터 소년체전 폐지 내지는 격년제 개최 주창자였다. 매년 대회에서 발생하는 부정선수 시비, 심판의 편파적 판정,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승부욕 등은 어린 선수나 교육자들에게 크게 해독을 끼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선수의 훈련과 출전비 염출도 지방 교육계로서는 큰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최하위에 머물렀던 요인
○ 대표팀 구성의 연기로 인해 중점 훈련이 적었으며
○ 비능률적이고 부적격한 선수 선발로 타도 전력을 미치지 못했으며
○ 개인 및 기록경기 기피로 경기인구의 확보가 어려웠던 점
○ 전지훈련 및 교환경기 기회가 부족했던 점
○ 시·군 교육청 및 각급학교 관리층의 참여의식이 부족했던 점
○ 대규모 학교의 운동기피로 인해 재정적인 면과 인적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
○ 학교와 경기단체간의 협조가 부진했던 점
○ 중앙경기단체와 유대가 결여되어 큰 문제가 유발할 때 해결치 못했던 점

  사 격
  (남 중 부) 단체 10위 1,406점
(여 중 부) 단체 7위 1,432점
  체 조
  (남초등부) 단체 7위 전주금암 115.50점
(여초등부) 단체 8위 이 리 초 112.35점
(남 중 부) 단체 7위 신 흥 중 191.55점
(여 중 부) 단체 4위 186.5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