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해마다 풍성한 각종 신기록을 쏟아내 국내 최대 엘리트 스포츠 제전으로
자리를 굳혔으며 체육입국을 실천하는 터전이 되었다.
희망찬 문민시대를 맞아 첫 번째 체전인 제74회 대회는 동서 지역감정을 타파하고 스포츠를 통한 화합과 단결로 신한국을
건설하는데 앞장설 것을 다짐한 대회였다. 엑스포의 도시 대전에서 개최된 75회 비대화에 제동을 건 대회로 기록된다.
86, 88 양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로 한국체육은 세계의 중심을 향해 힘차게 전진했다. 이에 따라 전국체육대회도 더욱 현대화하고
짜임새 있는 운영으로 내실을 닦았다. 특히 21세기를 눈앞에 둔 90년대 전국체육대회는 서울 뿐만 아니라 지방에까지 체육시설을
확장시켜 지방 체육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97 부산 동아시경기대회와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그리고 ’97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99 강원
동계아시안게임 등 국제종합대회를 지방에서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은 전국체전의 지방개최로 체육시설이 갖춰지고 국제종합대회운영의
노하우를 축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90년대에 들어 체전은 실시 종목수가 35개에 이르고 참가선수 수도 2만3천명이 넘어서 숙박이나 교통 등의 문제점이 많아
지방개최에 적신호가 울렸다. 이에 대한체육회는 구기종목의 사전 예선제를 실시, 체전의 질을 높이면서 참가 인원수를 줄였다.
77회 전국체전에서는 체전사상 처음으로 “달곰이”라는 마스코트가 선을 보였다.
제78회 전국체육대회는 울산광역시가 새로운 시도지부로 참가하여 16개 시도가 열전을 벌였고, 처음으로 야간 개회식을 실시하였으며
마스코트로 “해오리”를 사용, 전국체전에 마스코트의 채택이 정착되어가는 양상을 보였다. 제79회 전국체육대회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대회로 평가되는 서울올림픽의 10주년을 기념하는 대회로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어 첫 참가한 울산광역시를
제외하고 체전사상 전국을 일순하는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제80회 전국체육대회는 희망찬 21세기를 준비하고 국제공항의 건설과
Tri-Port 세계 도시화를 추진하고 있는 인천에서 16년만에 개최하였으며, 정식 36종목, 시범 3종목 등 총 39종목에
걸쳐 국내 및 해외동포가 참가, 전국체육대회가 아시아와 세계스포츠의 정상으로 떠오른 한국 스포츠의 산실임을 입증하였다.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의 리허설 성격으로 개최되는
|
|
81회 대회는 21세기 환 태평양시대의 국제교류 거점도시로의 발판을 마련코자
부산에서 야심차게 진행되었다. 아울러 경기장을 부산 아시안게임 시설의 최대활용으로 투자비를 절감하고 체전 정보 제공의
디지털 운영으로 뉴 밀레니엄시대 전국체육대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다.
제82회 대회는 충남에서 1979년 제60회 대회 개최이후 21년만에 충남과 대전광역시 분리 이후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대회 마스코트로 “귀도리”가 채택됐고 특수시설종목인 사이클, 사격, 승마, 조정, 카누의 분산 개최로 절약체전을 지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