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부터 제82회까지..[19]

제26회부터 제82회까지

전국체육대회는 1920년 7월 13일 조선체육회가 창설된 후 첫 행사로 그해 11월에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거행한 제1회 전 조선야구대회를 기원으로 삼으며 이땅에 종합경기대회가 등장한 것은 1925년이었다.
그 해 성동 원두에 경성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이 세워지고, 이를 기념하여 조선 신궁 경기대회가 마련되었으며 일본인에 의해 준비되고 운영되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체육대회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민족의 종합체육대회의 효시는 1934년 조선체육회 창립 15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제15회 전 조선 종합경기대회라고 보는 것이 옳다.
실시종목은 축구, 야구, 정구, 농구, 육상 등 5종목이고, 경기장도 경성운동장외에 욱천운동장(현 선린중 자리), 배재고보 운동장, 철도운동장 등 이른바 보조경기장을 사용하였다.
첫 번째 종합경기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난 뒤 이듬해에는 유도, 씨름, 검도, 역도가, 1936년에는 빙상, 복싱, 탁구가, 또한 1937년에는 배구가 추가되는 등 대회 규모가 커져갔다.
이처럼 대회가 발전함에 따라 경기수준은 나날이 향상되고, 많은 종목에서 전 일본을 휩쓰는 기개를 보이기도 하였다.
특히 축구에서는 완전히 일본을 눌러왔으며 육상, 탁구, 럭비 등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것은 오로지 「항일」이라는 대의의 정신적 승리이기도 했다.
전 조선 종합경기대회가 절정에 오른 것은 역시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을 전후한 2-3년 사이인 듯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황금시대는 일제의 새로운 탄압정책으로 더 발전하지 못하고 좌절되어야 했다. 1938년에 조선체육회가 강제 해산당하고 민족체육이 억압 당함으로써 전 조선경기대회는 제18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1945년 8월15일 광복의 감격은 민족 스포츠 대회의 부활로서 체육인들에게 또 다른 환희와 광명을 안겨주었다.
그 해 11월에 조선체육회가 재기하여 12월 자유해방 경축 전국 종합경기대회를 열었다.
광복을 맞은 민족의 기쁨을 표현하는 일종의 축제로 마련된 제26회 전국체육대회는 한국 스포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뜻깊은 대회로 경기종목은 육상, 축구, 야구, 배구, 정구, 럭비, 탁구, 사이클, 승마, 농구 등 10종목이었으며 이듬해 1월에는 동계 빙상대회 및 동계 스키대회로 발전했다.
군산팀이 육상, 축구, 농구, 야구, 정구 등에 출전한 이 대회엔 선발대회 없이 자유참가가 허용되었다.
경기단체들이 정비되고 스포츠 행사가 본격적으로 개최되기 시작한 1946년의 제27회 대회는 조선올림픽 대회로 불리기도 하였다.
육상과 사이클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 대회에서 야구 일반부 전주팀과 축구 중등부 전주농업고교팀이 우승을 차지하였다.
1947년 6월에 대한 올림픽 위원회가 IOC에 가입한 후에 개최된 제28회 전국체전에서 전북팀은 사이클과 궁도에서 좋은 성적을 냈을 뿐이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경축하는 제29회 대회는 가을에 서울에서 개최되었는데 이때부터 명칭을 전국체육대회로 고치고 이제까지의 자유 참가제를 시·도 대항제로 바꾸어 전북은 6위를 차지하였다. 모든 단체와 행사의 명칭도 “대한” 또는 “한국”으로 통일시키고 49년에 尹石重 작사, 金順愛 작곡의 “체육대회가”가 등장하였다.
전국체육대회가 틀이 잡힐 무렵인 1950년 6·25동란이라는 동족 상잔의 비극으로 제31회 대회는 중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속에서도 용솟음쳤던 체육인들의 정열과 투지는 다음해인 51년에 전화의 소용돌이를 무릎쓰고 광주에서 개최된 제32회 대회에서 전북은 6위를 하였다.
대회의 내용은 빈약했지만 개최의 뜻은 자못 큰 것이어서 이 소식은 곧 국제 올림픽위원회를 비롯한 각국 스포츠기관에 알려졌으며, 이에 감격한 세계 스포츠인들은 뜨거운 격려를 보내왔다.
1953년에 휴전이 되고 사회가 차츰 정돈됨에 따라 체육대회도 질적으로 충실해지고 양적으로 대형화해 갔다. 그리고 1952년 33회 대회부터 내리 다섯 번 서울에서 개최한 전국체육대회는, 중앙과 지방의 균등한 체육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 아래 지방 순회개최를 기하여 38회(57년) 부산, 41회(60년)는 대전, 43회(62년)는 대구, 44회 전주, 45회 인천 46회를 광주에서 열어, 애초에 의도한 바 스포츠의 전국적인 보급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또한 제36회 전국체육대회(1955년)부터 처음으로 성화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