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회 전국체육대회..[179]
26. 제 51회 전국체육대회
1970. 10. 6 - 10. 11 (서울특별시) 28종목

전북, 입장상 1위 … 종합 9위

선수단 남 843명, 여 286명, 임원 334명
  재일교포 선수를 비롯한 전국의 각 시도에서 1만 6천 3백여명의 선수가 참가, 10월 6일부터 11일까지 서울운동장 및 36개 보조경기장에서 거행됐던 제51회 전국체육대회는 49회 전국체전에서 지방팀으로 처음 우승했던 경북이 서울을 누르고 연 2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서울 2위에 이어 전남 3위 부산 4위 경기가 5위를 했고, 전북은 9위를 차지했다. 부별성적은 경북이 중등부와 대학·일반부에서 1위를 했고, 고등부가 2위를 했다.
  서울은 중등부 2위 고등부 1위 대학·일반부가 3위를 차지했고, 전북은 중등부 10위 고등부 8위 대학·일반부가 9위를 차지했다.
  입장상에는 전북이 1위를 차지했고 모범선수단상은 경남이, 재일교포는 감투상을 차지했다. 한편 메달획득면에서는 서울이 222개로 단연 우세했고 경북이 161개, 부산이 163개, 전북은 77개 획득했다.
  대회규모나 선수규모로 봐서 대회사상 최대였던 51회 전국체전은 경기보다 입장식에 치중한 주객이 전도된 대회운영이나 체전사상 최초로 선수구속사건이 나는 등 많은 오점을 남겼다.
  이번대회는 성화의 전국일주, 이북 5도 및 재일교포의 참가, 선수상호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전야제, 기념우표발행, 대회기간동안 스포츠사진전 개최 등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했지만 입장식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경기를 소홀이 취급했고 부정선수 문제로 실격 당하는 추태를 보였고, 남자고등부 하키경기에서 난투극으로 학생선수가 구속되었었다.
  대회규모가 비대해져 지방에서의 대회개최가 거의 불가능해졌고 현재의 경기장 시설로는 대회운영에 무리가 있어 전국체전을 중등부체전과의 분리가 불가피해졌다.
  이번 체전에는 대통령표창까지 걸고 기대했던 세계기록은 없었고 한국신기록 15, 타이 1, 주니어 한국신 2개와 대회신 53개, 대회타이 7개를 수립했다. 육상에서 한국신 3개, 타이1개,
 

사격 1, 수영 8, 역도 한국신 3, 주니어한국신 2개를 마크했으며, 대회신은 육상에서 22, 타이 3, 사격 2, 역도 2, 타이 40, 수영 18개가 나왔다. 이번 대회의 특징은 경북이 1위를 했고 전남, 경기가 바로 뒤쫓은 것으로 봐 지방체육이 균형있게 발전한다는 실증을 보여줬다.
  반세기를 기록하는 전국체육대회는 경기면이나 운영면에 있어 그 규모는 상상외로 방대해졌다. 따라서 입장식은 대회일련의 의식행사로서 대회에 임하는 임원·선수들의 정신자세가 평가되는 것임으로 입장식의 의의와 목적은 지극히 중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입장식에서 영예의 우승을 차지한 사실에 대해서는 이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경기면에서 볼때 예년 기록에 없는 부진한 성적에 대하여는 체육인은 물론 전도민의 실망이 아닐수 없다. 도 체육회 집행부는 미약한 재정과 실업팀 및 재경선수 스카웃 작업을 포기하고 순수하게 참석한 점도 한가지 부진한 원인으로 과감한 개혁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급격히 상승일로에 있는 경기기술의 향상이 가져온 전국체전의 양상은 연륜을 더 할수록 그 유형을 달리하여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우리 전라북도 체육이 걸어온 발자취를 통해서 몇가지 문제점은 제시하고자 한다.

1. 학교체육    
(1)
각급 학교단위 책임자 및 체육담당자의 체육 관심도가 문제점이 되었다.
(2)
각급학교 체육에 대한 방침, 예산, 지도 체계가 미약하였다.
(3)
학교체육에 대한 학부형 및 일반 사회의 참여 의도가 미약하였다.
(4)
학교체육 지도자 자질향상을 위한 사업이 극히 미온하였다.
(5)
체육지도자의 절대수가 부족하였다.
(6)
학교체육시설이 불완전하였다.
(7)
경기단체의 각급 학교체육에 대한 기술적 지원 또는 선수관리면의 협조가 부족 하였다.
(8)
각급 학교에 대한 도체육회의 지원사업이 미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