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전라북도민체육대회
1971. 6. 4 ~ 5 전주시 71년 6월 4일부터 제8회
전북도민체육대회 및 제52회 전국체전 전북선수 선발대회가 4천여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전주종합경기장에서 열렸다.
전북도민의 체력을 가늠해 보고 국체에서 전북의 힘을 과시할 도민 대표 선수를 선발하는 이 대회에서
도 체육회는 준비작업 미비로 어수선한 대회를 치루게 되었고, 경기면에서도 전주와 군산팀만이 10개 전종목에 참가했을
뿐 완주, 남원, 무주, 진안 등지는 겨우 2개팀만이 참가, 형식적 대회 인상을 풍겨주고 있었다.
기록면에서도 육상에서 고창여고 유병순 등 8개의 전북 신기록 및 대회 신기록을 세웠을뿐 다른
종목에서 별로 뚜렷한 진전이 없었다.
더욱이 힘을 겨루어볼 상대팀 조차 없어 육상, 사격 등 기록경기를 제외한 경기중 34개 부분은
부전승을 하는 등 총 1백4개 부분경기에서 단 2개팀만 참가한 경기가 무려 전체경기의 43%에 달하고 있었다.
단적으로 팀 구성이 적고 참가선수도 별로 많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또한 참가선수나 체육관계 인사의
단합에도 문제점이 많았다.
럭비 축구경기도중 전주고와 전주영생고의 2천여 학생들이 맞붙어 중·경상자를 내는 불상사를 야기했고,
핸드볼 경기때에는 정읍중에 9대5로 패한 이리남성중이 정읍중 선수를 구타하여 경기장이 소란했었는데 정모교사까지 가세해
정읍중 선수가 실신하자 관중들은 정교사 처벌을 외치면서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었다. 당시 부정선수 시비도 적지 않아
게임중단 사태가 속출했고 경기장 주변에 뺑뺑이, 화투놀이 등 사행행위자와 잡상인들이 들끌어 경기장 질서도 엉망이었다.
또한 총화 단합으로 부진한 전북체육을 회생시키기 위해 힘써야 할 일부 체육인사들이 불화반목,
오히려 체육발전에 저해요인이 되고 있었다.
71년 2월 1일경 임원 개편을 마친 배구협회는 임원선출을 둘러싸고 당시 집행부와 일부 지방대의원
사이에 의견이 맞서 이리, 군산 대의원들이 ‘집행부 불신임안’을 내고 회원들에게 연판장을 받고 있었다.
육상연맹도 신임이사 구성문제로 한 동안 말썽이 생긴 바 있었고, 농구협회는 노장파와 소장파의
대립으로 국체 선발전 당시 노장파 부회장이 기록을 담당하고 노장파 이사 2명이 하루종일 심판을 보고 있었지만 소장파
이사들은 못 본체 외면하고 있었다.
전북신기록
투 포 환 : 권오금(전 라 고) 13m92
1,500m : 유병순(고창여고) 5분12초(종전 5분52초)
110mH : 김권식(완 산 중) 15초2(종전 16초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