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1178]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도 한국은 상승일로에 있다. 동계 대회의 경우 한국은 1960, 62, 64, 66년 대회에는 참가치 못했으며, 68년 인스부르크 동계대회에 와서야 대회에 얼굴을 내밀었다. 68년 대회와 70년 핀란드 로바니에미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는 특별한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었다.
  1972년 미국 레이크 플레시드서 열린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는 한국 동계종목사에 신기원을 이룩한 대회였다. 하계종목과 달리 동계스포츠의 경우 세계와의 기량차가 너무 커서 한국은 그 동안 주요 국제대회에서 단 한 개의 메달도 건지지 못했었다. 동계종목은 한국인에게 넘지 못할 거대한 산으로 느껴지던 때도 있었던 바 레이크 플래시드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금 1개, 은 2개, 동 1개의 획득은 한국 동계스포츠의 희망과 감동을 주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에 출전한 全善玉은 1,000m에서 금메달, 1,5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으며, 崔重熹 선수도 500m에서 은메달을 3,000m에서는 동메달을 차지했다.
  1981년부터 87년 사이에 열린 네 번의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는 이렇다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1989년 불가리아의 소피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와서야 한국의 동계 스포츠는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숏트랙이 이 대회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자 이 종목에 적합한 신체적 조건을 갖춘 동양권 선수 특히 한국선수들은 세계정상에 도전할 만 하였다. 金基焄이 숏트랙을 완전히 평정하였으며, 李準鎬와 모지수도 외국선수에 비해 한 수 위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이후 국제무대서 숏트랙은 한국의 메달 보고가 됐다. 91, 93, 95대회에서도 한국은 숏트랙을 바탕으로 세계 최정상권을 유지했다. 소피아 대회서는 금 4개, 은 4개, 동 1개로 세계 4위에 오르더니 93년 삿포르 대회에서는 금 5개, 은 2개, 동 3개로 계속해서 세계 3위에 93년 쟈코펜 대회에서는 금 5개, 은 2개, 동 3개로 계속해서 최강의 전력을 보여주고 있다.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의 성과는 올림픽에도 이어져 알베르빌과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세계 10위권 진입에 성공했다.
스페인 하카에서 개최된 95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2. 18 ∼ 26)에 한국은 빙상, 스키, 아이스하키, 바이아드론 등 4개 종목에 63명(임원 21명, 선수 42명)을 파견했다. 이 대회서 한국은 금 6개, 은 4개, 동 4개를 획득, 종합 2위에 올라 유니버시아드 대회 참가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이 대회서도 숏트랙 이외의 종목은 세계수준과 거리가 멀어 숏트랙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 일말의 불안감을 주기도 했다.
  1959년 토리노 하계대회 이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한 지 40년이 흘렀다. 67년 동계대회 이후 한국은 세계의 대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해왔다. 대회 성적도 중요했지만 그보다는 자유, 이성, 진리를 추구하는 지성인들의 축제인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미래 각국의 주역이 될 외국의 젊은이들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 우정을 돈독히 함으로써 국제사회의 흐름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도 대회 참가가 주는 큰 의미이다. 한국은 97년 동계 유니버시

 

 

 

 
 
97무주·전주 동계U 대회 개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