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유니버시아드대회..[1163]

형태도 육상종목에 한정된 참가였을 뿐으로 한국의 유니버시아드 대회 참가사와 역사적으로 맥이 이어진다고 볼 수 없다. 한국은 동경대회 개회직전인 1967년 8월 24일 FISU에 정식 가입했다.
  당시 국내에는 대학 스포츠를 관장하는 단체가 KUSU(Korea University Sports Union)와 KUSB(Korean University Sports Board)로 양립되어 있었으나, 국제무대에서의 대표성 문제로 약간의 진통을 겪은 끝에 KOC 산하의 KUSB에 통합,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도 갈등을 불렀다.
  1965년 부다페스트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FISU에 가입한 북한은 DPRK의 호칭을 고집하였다. 이에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가 호응하고 나서자 올림픽 대회에서의 공식호칭을 원칙으로 하는 FISU의 방침을 고수하려는 KOC와 심각한 갈등을 노출했다. 대회유산의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한국은 KOREA라는 국호대신 KUSB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국이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모습을 보인 것은 1959년 토리노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참가후 10년이 지난 1968년 인스부르크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스피드 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스키 등 3종목에 걸쳐 임원 3명, 선수 8명(남 5명, 여 3명)을 참가시킨 이래 역대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한번도 거르지 않고 선수단을 파견해 오고 있다. 1981년 유니버시아드 대회 이전까지만 해도 동계대회는 홀수년도에 하계대회는 짝수년도에 열려왔으나, 1981년 하카대회때부터 양 대회는 같은 해에 열리게 되었다. 동계대회의 경우 1972년 이후 하카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이전까지 대회가 열리지 못했다. 하카대회를 계기로 동·하계 대회가 같은 해에 정기적으로 개최돼 3대 국제종합대회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한국이 토리노 대회부터 가장 최근에 개최된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까지 열 여섯번이나 대회에 참가하였다. 네 번의 불참은1961, 63, 65대회와 1975년 로마 유니버시아드 대회이다. 1961, 63, 65대회는 한국이 FISU에 정식 가입하기 이전의 대회였으며, 1975년 로마 유니버시아드는 기존의 유니버시아드와 달리 세계대학생 육상대회로 개최된 대회였다.
  한국은 그 동안 참가해온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 대회를 통하여 한국의 젊은이들은 세계의 젊은이들과 깊은 우의를 다졌으며, 이해의 폭을 넓혔다. 유니버시아드 대회 참가 초창기에는 부진을 면치 못하던 경기성적도 점차 상승곡선을 그리며 세계정상권에 접근하고 있었다. 1969년 동경대회에서 금 1개(여자농구), 은 9개, 동 2개를 획득, 종합순위 10위를 차지하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으나 70, 73, 77년 3개 대회서는 성적이 저조했다. 이 3개의 대회에 참가하는 동안 단 한 개의 금메달도 획득치 못하고 70년 토리노 대회서 동 1개(남자배구)를 획득하는데 머물렀다.
  1979년 멕시코시티 대회에서 마침내 남자배구가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맛보았다. 70, 73, 77년 대회서 계속 정상정복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남자배구가 마침내 79년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