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유니버시아드대회..[1162]

4. 유니버시아드 대회

  세계 대학스포츠가 한자리에 모이는 유니버시아드  (Universiade)대회는 올림픽대회, 아시아경기대회와 더불어 한국이 참가하는 3대 국제종합대회의 하나이다.
  유니버시아드대회의 기원은 1959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토리노대회로 보는 것이 설득력 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이전에도 유럽에서는 대학생들의 스포츠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었다.
  제7회 엔트워프 올림픽이 치러진 1920년을 계기로 유럽의 대학사회에서는 자신들만의 대회를 개최코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 소산이 바로 1923년 5월에 열린 국제대학경기대회이다. 이 대회는 이후 계속 개최돼 오늘날 유니버시아드대회의 디딤돌이 되었다.
  문헌에 따라서는 동·서 유럽의 대학 스포츠가 단일화된 국제 학생스포츠 주관 파리대회를 대회 기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적어도 오늘날 같이 FISU가 주최하게 되고 공식적으로 유니버시아드 대회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이 1959년 토리노 대회부터라는 측면에서 유니버시아드 대회의 출발은 59년 대회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대회 이후 유니버시아드 대회는 종전 사용하던 횟수와 호칭을 버리고 대회명칭에 개최년도를 붙여 부르게 됐다.
  한국이 유니버시아드대회를 처음 참가한 것도 토리노 대회때 부터이다.
  토리노 대회는 1959년 8월 27일부터 9월 6일까지 43개국 985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육상, 수영, 펜싱, 테니스, 배구(남·녀), 수구, 농구, 다이빙 등 7개 종목으로 개최됐다.
  유니버시아드 대회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이 대회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한 상태였다. 스포츠 강국 미국은 고작 3명의 선수를 파견하는 등 소극적이었으며, 유럽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대회였다.
  한국은 토리노 대회에 육상경기연맹 산하 한국대학생 육상경기연맹에서 파견하였다. 참가규모는 임원 1명, 선수 5명으로 이루어졌으며, 멀리뛰기에서 徐永珠 선수가 6위에 입선하는 기록을 남겼다.
  제1공화국의 혼란기에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태극기를 앞세우고 세계 젊은이의 스포츠 제전에 참가한 것은, 그 자체가 비록 단일종목에 한정 됐어도 역사적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1961년 소피아 대회와 63년 포르트알레그 대회, 65년 부다페스트 대회에는 계속 불참하다가 이웃나라 일본에서 열린 67년 동경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참가하게 됐다.
  이 대회야 말로 한국이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정식으로 선수단을 파견한 대회였으므로 참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1959년 토리노 대회의 경우 참가는 했지만 그것은 한국이 유니버시아드를 총괄하는 FISU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기 이전이고 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