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자카르타 아시아경기대회..[1095]
제4회 자카르타 아시아 대회
1962. 8. 24 ~ 9. 4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제4회 대회는 1962년 8월 24일부터 9월 4일까지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행해졌다. 하지만 이 대회의 개최 직전에 주최국인 인도네시아가 이시아경기연맹 가맹국인 이스라엘과 자유중국에 대해 정치적인 이유로 ID카드를 발행하지 않고 실질적인 참가거부의 태도를 나타냈기 때문에 대회 그 자체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자유중국 및 이스라엘이 참가하지 않는 한 제4회 아시아경기대회의 육상종목을 불법화하는 동시에 이 경기에 참가하는 국가는 국제육상연맹으로부터 제명처분을 한다고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역도경기에서도 국제역도연맹으로부터 육상경기연맹과 유사한 전문이 래도하였던 것인데 8월 26일에는 국제역도연맹 회장과 사무총장이 직접 자카르타로 와서 그 사태는 더욱 중대화하였으며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 및 국가는 앞으로 국제역도연맹에서 제명되는 동시에 일체의 국제경기에도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을 각국 역도대표자가 모인 자리에서 경고하였다.
  한국은 위와 같은 이유로 육상, 역도를 제외한 10개 종목(수영, 축구, 농구, 배구, 복싱, 사이클, 레슬링, 사격, 탁구, 필드하키)에만 출전하였다.
  한국의 종합성적은 출전한 10개 종목으로만 따진다면 금메달 4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로 2위가 되는 것이고, 출전한 종목중에서 3위 이상에 입상을 못한 것은 필드하키뿐으로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전체종목에 걸쳐 볼 때는 육상과 역도의 불참으로 6위의 성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선수단의 전적을 살펴보면 사격에서는 자유소총의 南相完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고, 자유권총의 徐康旭 선수와 소구경 3자세의 裵炳基 선수가 각각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는 대한사격연맹 창설이래 국제대회의 첫 입상의 영예를 획득한 것이다. 사격연맹은 군사혁명 이후 대한체육회의 강력한 지도하에 새 출발을 하였으며, 가입회원에게도 새로운 기풍과 각오아래 훈련시킨 결과가 이번 대회의 영예로 나타난 것이다.
  복싱경기에서 한국은 10체급중 8체급에 참가하였다. 그 중 라이트웰터급의 金得鳳 선수와 플라이급의 鄭申朝 선수만 국제시합에 경험이 있는 기성선수이고 나머지 6명은 신인선수로 구성되어 5차에 걸친 합동훈련을 마치고 대회에 임했다. 그 결과 플라이급의 鄭申朝 선수, 라이트웰터급의 金得鳳 선수, 미들급의 金德八 선수가 각각 금메달을 획득했고, 라이트미들급의 申良一 선수가 은메달을 차지했다.
  레슬링에서는 플라이급의 張昌宣, 밴텀급의 崔永吉, 페더급의 鄭東求, 라이트급의 奉昶元, 웰터급의 吳在泳 등 8체급중 5체급의 선수가 참가했다.
  그 결과 자유형 플라이급의 張昌宣 선수가 은메달을 획득했고, 자유형 밴텀급의 崔永吉 선수와 그레꼬로만형 웰터급의 吳在泳 선수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특히 그레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