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마닐라 아시아경기대회..[1092]
제2회 마닐라 아시아 대회
1954. 5. 1 ~ 9 필리핀 마닐라

  창설대회는 예정보다 1년 늦었으나 올림픽대회의 중간년도에 개최한다는 원칙이 지켜져서 제2회 마닐라대회는 1954년에 개최되었다. 당초에 대회 프로그램으로 포함 될 예정이던 테니스, 배드민턴, 야구는 대회헌장을 존중한다는 방침에 따라 실시하지 않게 되었고, 제1회 대회에서 실시된 육상경기의 마라톤경기와 사이클 경기는 중지되었다. 반면에 수영경기에서는 접영종목을 평영종목에서 분리하여 실시케 되고, 그밖에 예술작품의 전시도 곁들여졌다.
  경기면에서도 한국선수단은 처녀출전에도 불구 종합 3위를 차지, 7,000여명의 18개국 선수들이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기량을 겨룬 결과 한국은 금메달 8개, 은메달 6개, 동메달 5개로 메달 집계에 의한 종합성적 3위를 차지했다. 종합우승은 금메달 38개, 은메달 36개, 동메달 24개를 획득한 일본이 차지했고, 주최국 필리핀은 금메달 14개, 은메달 14개, 동메달 17개로 종합 2위였다.
  한국이 획득한 8개의 금메달 중에서 5개는 역도부문에서 나왔는데, 이는 한국팀의 작전이 제대로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당초 한국 역도팀은 7개 체급중 미들헤비급과 헤비급을 제외한 5개 체급에 8명이 출전하기로 하고 페더급, 라이트급, 미들급등 3체급에는 2명씩 선발했던 것인데 막상 현지에 도착하니 역도의 강국 이란이 국내정변으로 불참했다. 이에 따라 한국팀은 체급을 올려 참가종목을 늘려도 우승이 가능하다는 판단아래 체중을 늘리는 작전을 시작했다. 라이트급의 金昌熙선수는 미들급으로, 미들급의 金晟集선수는 라이트헤비급으로, 라이트헤비급의 高宗具선수는 미들헤비급으로, 각각 한체급씩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급작스런 체중 불리기도 쉽지 않았다. 급기야는 계체량 직전 金晟集선수는 3홉들이 오렌지주스 5병, 高宗具선수는 12병을 마시고 한계체중을 넘어섰다.
  결국 체중을 올린 3명과 밴텀급의 劉仁鎬선수, 라이트급의 趙奉稷선수 등 5명이 금메달 획득에 성공했던 것이다. 특히 밴텀급의 劉仁鎬선수는 용상에서 129.2㎏을 들어올려 종전의 세계기록인 127.9㎏을 경신하면서 합계 288.3kg으로 우승했다.
  그밖에 종목에서는 헬싱키 올림픽 마라톤에서 쓴잔을 마셨던 崔崙七 선수와 崔忠植 선수가 육상 1,500m와 10,000m에 각각 금메달을 획득해 장거리 종목을 석권했다. 또한 5,000m에서도 崔崙七 선수가 은메달을 획득했고, 3단뛰기의 崔榮琪 선수와 헤머던지기의 宋敎植 선수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한편 安永漢 선수는 원반던지기에서 자신이 세운 바 있는 한국신기록인 45m78에 훨씬 미달하는 39m99로 겨우 5위를 차지했다.
  한편 복싱경기에서는 페더급으로 체급을 올린 朴奎鉉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고, 플라이급의 李長敎 선수와 라이트웰터급의 李三龍 선수가 은메달을 차지했다.
  웰터급의 金允西 선수는 동메달을 차지했다. 하지만 헬싱키올림픽 동메달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