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시아경기대회..[1084]

명성을 유감없이 떨쳤다.
  테헤란서 성공적인 도약을 마친 전북체육은 1978년 제8회 방콕대회에서 다관왕시대를 열면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8회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전북선수는 金益鍾, 姜龍植, 金菊鉉, 申鍾淳, 申仁洙, 李德姬, 朴鍾吉, 朴南順, 李承均, 朴仁圭, 崔富永, 朴永圭.
  전북은 이 대회서 금 4, 은 7, 동 6개를 일궜다.
  펜싱의 金菊鉉이 금 1, 은 1, 동 2, 테니스의 李德姬가 금 2, 은 1, 사격의 박종길이 금1, 은 1, 동 2를 따내어 다관왕에 올랐다.   이 밖에 사이클의 申仁洙가 은, 사격의 朴南順과 복싱의 박영규가 동메달을 따내 메달리스트 대열에 합류했다. 8회 방콕대회는 테헤란대회보다 성적이 못미쳤다는 점에서 전북체육의 휴식기였다.
  그러나 이 대회 휴식으로 재 충전을 기한 전북은 1982년 9월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수많은 별들을 탄생시키며 아시아坐를 현란하게 수놓았다.
  출전선수는 金鍾允, 田玉金, 金梁坤, 金春浩, 朴仁圭, 梁英子, 姜泰求, 朴英喆, 林圭夏, 蘇培元, 金鉉乎, 柳寅卓, 金泰雨, 朴鍾吉, 郭定勳, 李承均, 朴哲承, 郭善行, 朴英朝, 金聖淑, 黃金淑, 李恩求, 朴柱奉, 李得春, 崔基奉.
  전북선수들이 거둔 성적은 금 5, 은 5, 동 10개로 역대 최고였다.
  이때 금메달을 캐낸 뉴델리의 1등성 별들이 마라톤의 김양곤, 테니스의 김춘호, 농구의 박인규, 사격의 박종길이었다.
  김양곤의 마라톤 제패는 한국이 아시안게임서 이룬 최대 쾌거였다. 전주상고 장거리 출신인 김양곤은 황소같은 뚝심을 바탕으로 뉴델리의 무더위를 극복, 마라톤 왕국의 명성을 숙원하던 온국민에게 환희를 안겨주었다.
  박종길은 스탠더드 권총 개인서 금, 속사권총 개인서 은을 따내 2회 연속 금행진을 계속했다.
  은메달을 따내 2등성별로 빛난 선수들은 테니스의 김춘호, 탁구의 양영자, 여자하키의 김성숙, 황금숙 등 당시 이에리사를 이어 한국여자탁구의 에이스로 부상한 양영자는 이대회 여자단체 은, 단식 동을 따내 국제무대에 발판을 굳힌 후 88년 마침내 서울올림픽서 세계 탁구여왕에 등극하게 되었다.
  동메달을 획득한 뉴델리의 3등성 별들은 남자핸드볼의 강태규, 임영철, 임규하, 강세용, 복싱의 소배원, 김현호, 레슬링의 유인탁, 배드민턴의 이은구, 박주봉, 이득춘 등 국내무적 전북레슬링의 바톤을 이은 유인탁은 뉴델리대회 후 2년뒤 LA올림픽서 금메달을 획득, 한국레슬링의 염원을 풀었다.
  배드민턴은 남자단체에 이어 이은구와 짝을 이룬 남자복식서 동메달을 캐낸 박주봉 역시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서 남자복식 금메달을 따냄으로서 올림픽坐에 빛나는 이름을 새겼다. 82년 뉴델리 이후 86년 서울대회에 이르는 4년 동안 전북체육은 아시아 수준을 뛰어 넘었다.
  이미 84년 LA에서 유인탁과 복싱의 신준섭이 올림픽 월계관의 영광을 맛봤다.
  이밖에 역도의 전병관, 배드민턴의 박주봉, 정소영, 복싱의 김광선, 탁구의 양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