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LA올림픽..[1056]

제23회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대회
1984. 7. 28 ~ 8. 12 미국 로스엔젤레스

  전세계 140개국에서 7,800여 선수가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21개 종목에 걸쳐 284명이란 올림픽 참가사상 가장 큰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하여 금메달 6, 은메달 7개를 따냄으로써 참가국 중 종합성적 10위를 기록했다.
  한국이 1948년 런던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이후 76년 몬트리올 올림픽대회까지 8차례의 올림픽에서 거둔 한국팀의 성적은 금메달 1, 은메달 6, 동메달 11개 등 모두 18개에 불과했다. 따라서 LA대회에서 한국선수단이 거둔 성적은 과거 28년간 한국팀이 획득한 메달수 보다도 많게 나타남으로써 세계만방에 한국 국민의 우수성과 무한한 한민족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떨쳤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선수단이 이처럼 좋은 성적을 내게 된데는 물론 동유럽권 국가들이 참가하지 않은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체육 진흥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당국의 정책적인 배려가 있었기에 태릉선수촌에서 1983년 1월 17일부터 500일간에 걸쳐 실시된 선수들의 각고의 강화훈련이 가능했었고, 또 각 경기단체의 많은 투자와 온 국민의 정성어린 성원도 뒤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당초 메달획득 가능종목이었던 투기종목 즉 유도, 레슬링, 복싱에서 5개, 양궁에서 1개의 금메달을 딴 것은 메달박스로서의 앞날에 가능성을 내다보게 했다.
  8명의 선수가 참가한 유도는 금 2, 은 2, 동 1개로 5명의 선수가 입상함으로써 체급종목가운데 가장 훌륭한 성적을 올렸다. 특히 라이트급의 安炳根과 하프헤비급의 河亨柱는 유도 종주국인 일본세를 물리치고 우승을 했다.
  레슬링은 14명이 출전하여 금 2, 은 1, 동 4개 등 모두 7개의 메달을 획득하였으므로 대 성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레꼬로만형 62㎏급 金原基의 금메달은 이번 대회의 첫 번째 쾌거로서 선수단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어 줌은 물론 메달획득에 대한 가능성과 자신감을 심어주어 여타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에게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었다. 金의 우승이 한국에게 더욱 큰 뜻이 있는 것은 그레꼬로만형이 올림픽 대회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획득했다는 사실이다.
  자유형 68㎏급에 출전한 柳寅卓은 기술이나 체력면에서 월등한 수준이었으나 한국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는 일본선수가 우려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가미무라와의 4차전 경기는 11대4의 일방적인 점수차로 판정승을 거둠으로써 우승이 확실시 되었으나 미국선수와의 결승전은 조결승전에서 입은 허리부상 때문에 부담감이 컸다. 이러한 악조건 하에서 결승전에 나간 유선수는 부상을 숨기고 강인한 정신력으로 사투 5대5 우세 판정승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9명의 선수가 출전한 복싱에서는 미들급의 신준섭이 금, 웰터급의 안영수가 은, 라이트급의 전칠성이 동메달을 따내어 한국복싱에 희망을 안겨주었다.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유인탁 - 레슬링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