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모스크바올림픽..[1055]

제22회 모스크바 올림픽 대회
1980. 7. 19 ~ 8. 3 소련 모스크바

  몇차례 위기를 맞으면서도 잘 이어져 온 올림픽운동은 몬트리올대회 이후 동서양대진영의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반쪽으로 갈라지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1980년 모스크바와 1984년 로스엔젤레스대회는 양쪽진영이 번갈아 가며 집단보이콧트를 했다. 이것은 근대올림픽이 부활된 이후 맞는 최대의 위기가 아닐수 없었다.
  반쪽 올림픽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계기는 미국 ‘카터’대통령의 보이콧 선언에서 비롯된 것이다.
  1979년 12월 소련이 아프카니스탄을 무력으로 침공하여 친소정권을 세우자 카터대통령은 소련군의 즉각 철수를 촉구하면서 다각도의 보복 대응책을 마련했다.
  “신성한 올림픽정신을 훼손시키는 처사”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올림픽 보이콧트를 정치적 요구관철의 카드로 내세운 것은 가장 위험부담이 적으면서도 가장 효과가 큰 압력수단으로 믿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980년 2월 미국정부는 올림픽 불참을 공식선언 했으며 서방국가들이 속속 동조하기 시작했다.
  KOC에서도 한국정부의 뜻을 받아들여 4월 23일 미국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KOC는 당시 두차례 회의를 갖고 논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 5월 17일 위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불참을 확정지었다.
  이렇게 해서 모스크바 올림픽은 한국, 미국을 비롯한 서독, 일본, 캐나다 등 67개국이 불참한 가운데 80년 7월 19일부터 8월 3일까지 거행됐다. 보이콧트 문제로 개막식전까지 참가, 불참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나라들이 있어 대회 참가국 수 조차 파악되지 않았으나 결국 대회조직위원회 발표에 의하면 참가국은 81개국, 참가인원은 6,948명이었다.
  한국, 서독등 최근의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획득해 온 나라들이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트 했기 때문에 대회의 내용과 성적이 두드러지게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세계신기록(타이기록 포함) 39, 올림픽 신기록 95개가 쏟아져 나옴으로써 이전의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나온 세계신 40, 올림픽신 49개와 비교해 볼 때 크게 내용이 뛰떨어진 대회였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한편 KOC는 선수단은 파견하지 않은 대신 국제경기연맹이 올림픽기간중에 정기적으로 소집하는 국제회의에는 대표를 파견하고 또 경기연맹이 개인자격으로 지명하는 국제심판 및 주리(부심상)회의에도 참가를 허용했다.
  전북출신은 ISF(국제경기연맹)총회 대표로 궁도회장인 申東昱씨가 참가했다.